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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롤 - 한개의 이야기

    한 남자가 있었다. 이남자가 어느정도로 독한 남자냐면, 상대방이 크리스마스날 가족과 단란하게 케이크를 사서 그 케이크에 촛불을 붙이려는 순간 집에 난입해서 전부 깡그리 뒤엎고 빚을 받아가는 사람이다. 그것도 우연히 타이밍이 좋은게 아니라 그 타이밍을 맞추려고 기다리는 남자라는것이다. 언젠가 내가 이 남자에게 가장 좋아하는 타이밍을 물었더니 채무자의 가족이 단란하게 모여있고, 분위기가 따사로울때가 가장 좋다고 했다. 물론 그 남자의 역활은 촛불을 붙이고 짝짝짝 박수를 치는 사람이 아니라 난입해서 깽판을 치는 인간이었다. 여튼 그런 남자와 나는 꽤나 오래되먹은 친구다. 무려 십년전부터 알고 지내서 서른이나 먹은 지금까지도 알고 지내니, 유소년과 청소년 시절은 함께하지 못했다고 해도 대학시절과 졸업 이후에 매년간 다 합칠경우 스트레이트로 다섯달도 넘는 시간들을 붙어다녔으니, 절친한 친구 이상이라고도 할 수 있을것이다. 이 남자의 이야기를 묻는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두가지에 놀라는데 첫째는 그 남자가 대학을 나왔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나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과 그렇게 자주 만나서 노는 친한 친구라는 것이다. 아 물론 내가 좀 그런부류의 사람하고 안 어울리게 생기긴 했다. 난 순해빠져서 그냥 평범한 안경이나 끼고 오래 앉아 있어서 등과 어깨가 약하게 굽어있다. 그 남자는 뭐 람보같은 근육질은 아니지만 군살과 과장된 근육이 없고, 옷을 두껍게 껴입어도 그 옷속에 단단한 몸이 있을것 같아보이는 그런 사람이다 게다가 얼굴은 눈 끝이 날카로워서 평범하게 생긴 다른 부분까지 전부 날카롭게 만들어버린다. 외모 이야기는 이쯤하고 또 다시 크리스마스가 왔고, 나는 전화를 했다.

"너님아."
"너 회사 점심시간 끝나지 않았냐? 어떻게 전화를 하고 있냐?"
"그건 나님 문제니까 신경 끄셔도 되구여, 크리스마스에 수금하러 가지 말고 저랑 저녁이나 잡수시져."
"어감 나쁘게 수금이 뭐냐? 그냥 방문이라고 해도 되잖아."
"수금 맞잖아. 여튼 너 나랑 하루종일 붙어다니면서 밥이나 먹고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놀자."
"우리가 게이커플이냐? 남자새끼 둘이 하루종일 크리스마스에 붙어있게?"
"너 애인있음?"
"없지."
"나는?"
"너도 없잖아."
"그럼 너 나만큼 자주 붙어다니는 친구는 있냐?"
"......없는것 같다."
"나도 없거든. 고로 여기서 공식이 성립되는거야. 너님과 나는 친한 친구다, 근데 둘다 애인이 없다, 고로 같이 솔로의 크리스마스를 보내는것은 지당한 사실이다. 어떠냐? 이 공식? 완벽하지 않음?"
"뭔가 미묘하게 비논리적인것 같은데."
"뭘 그런걸 일일이 따지시나여, 머리 복잡해짐. 여튼 나랑 그날 그냥 붙어다니는거다?"
"알았다. 너 과장한테 깨져서 울기전에 어서 업무로 복귀해."
"과장한테 깨지긴 해도 운적은 없거든?"
"넵. 믿어드리겠습니다."
"알았다. 끊어, 시간 조금만 더 끌면 과장한테 깨진다는 농담이 현실이 될것 같아."
"어 그래 저녁에 보자."

전화가 끊어졌다. 이로써 올해는 이놈이 한 단란한 가족의 크리스마스를 깨부수는 짓거리를 예방하게 되었다.  이 남자-친구란거 다 까발려졌으니 이제 좀 단순하게 표현을 해서 이놈-도 그저 나처럼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를 수행하는것일 뿐이지만, 그게 딱히 크리스마스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사실 저번에 말하기를 굳이 크리스마스에 할 필요는 없지만, 그 타이밍을 자신이 사랑해서 크리스마스에 그 깽판을 치노라고 고백한적이 있기때문에, 별로 큰 문제는 되지 않을것이다. 나는 핸드폰을 중지와 엄지를 이용해 허공으로 한번 튕겨내서 손으로 받은뒤에 내 조그맣고 안락하지 못한 책상으로 향했다. 근무가 끝나려면 아직 여섯시간이나 남았고, 크리스마스는 이틀이 남았다. 내일은 바햐흐로 크리스마스 이브인것이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사실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해봤자 진짜 별거 없다. 내가 애인이라도 있었으면 중가의 와인한병과 조그마한 딸기 생크림케이크라도 사서 로맨틱한 밤-캬 좋다.-을 만들었을지 몰라도, 나는 이즈음만 되면 비참해지는 솔로라서 그런것은 다 꿈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이제 막 대학생이 된 엘리트 사촌 여동생을 위해서 큰 사이즈의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사가지고 들어가기로 했다.  왜 친동생도 아닌 사촌 여동생하고 같이 사냐고 물어보면, 나의 위대하고 강하신 사촌 여동생님은 한국의 모두가 칭송하는 그 대학의 법학과에 들어가셨는데, 이모댁이 좀 떨어진 동탄신도시에 사시는터라 서울에 사는 우리집에 같이 살고 있다. 덕분에 나는 집에서 다 떨어진 티에 짧은 반바지만 입고 편하게 뒹굴지도 못한다. 뭐 법학과라고 다 엘리트가 되란 법은 없겠지만, 국가가 공인하신 천재 법학도라서 엘리트라고 불러도 될것같다. 본인은 그렇게 불리는걸 무척이나 싫어하는것 같지만. 게다가 귀엽게 생겼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분은 그 유명하신 엄친딸이라는 이야기지.

각설하고, 회사에서 길을 가다보면 괜찮은 빵집이 하나 있다. 이름은 런던 바게트리. 유명하신 모 빵체인점의 이름을 괴악한 센스로 패러디한것 같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왜냐면 이 집의 딸기 생크림 케이크는 꽤 맛있고, 나는 거기에 만족하기 때문에, 주인장의 괴악한 네이밍 센스따위는 내 알바가 아니라는거지. 딸기 생크림 케이크의 좋은 맛에 비해 다른 케이크의 맛은 조금 평범해서 문제긴하지만 보통의 잡동사니 빵의 맛도 훌룡하기때문에 딸기 생크림 케이크와 보통 빵을 사러갈때는 이곳을 언제나 애용하고 있다.

"어서오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아주머니."
"오 총각 왔어?"
"예, 크리스마스이브라서 케이크 사러 왔어요. 맨날 사가는 케이크 라지 사이즈로 한개 포장해서 주세요. 크리스마스 케이크니까 폭죽만 받아갈께요."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아주머니가 케이크 상자를 가지러 카운터 뒤로 사라진 동안 나는 쿠폰을 찾기 위해서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여동생과 내가 빵을 살때마다 받은 도장이 찍힌 쿠폰은 어느새 스무개를 넘어서, 우유식빵을 공짜로 얻어갈 속셈이었기때문이다. 깜빡하고 바꿔가지 않으면 강인하신 여동생님께 눈빛 공격과 더불어 팔뚝에 꼬집힘을 당할테니 반드시 사가야 했다. 난 그 꼬집힐때의 아픈 감각이 미치도록 싫다. 그나저나 아침에 오른쪽 주머니에 쿠폰을 넣어뒀는데 없다. 어라?

"아씨 어디 간거야?"
"뭐가 사라졌어?"

때마침 타이밍 좋게 복귀하신 아주머니가 내 혼잣말을 듣더니 나에게 물었다.

"아 쿠폰이요. 스무장 모았거든요. 동생이 우유식빵으로 바꿔오라고 해서요."
"그 다른쪽 주머니도 찾아보지 그래?"
"안그래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아 씨 이게 어디 간거지?"

나는 오른쪽 주머니와 왼쪽 주머니를 탈탈 털었지만 쿠폰은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순차적으로 바지 뒷주머니와 가방을 털었지만 여전히 쿠폰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그 주머니들을 터는 동안 빵집 아주머니는 케이크 포장을 마쳤고 나는 우유식빵 없이 케이크만 가지고 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가자 부모님 두분은 한가롭게 티비를 보고 계셨고, 여동생은 티셔츠와 긴 츄리닝 바지를 입은채로 다리를 가슴께로 모아 앉아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면서 부모님이 앉아계신 소파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넥타이를 대충 끌러두고 옆에서 같이 티비를 보고 있자니 여동생이 컴퓨터를 끄고 내가 사온 케이크를 보고서는 식빵은 안 사왔냐고 물어봤다. 나는 쿠폰을 잃어버렸다고 대답했고, 여동생은 방에서 한참을 뒤적거리더니 내게 쿠폰을 가지고 왔다.

"이 쿠폰을 왜 니가 가지고 있는거냐?"
"아침에 오빠 준다는거 깜빡했어 헤헤."
"난 내가 가지고 있는줄 알고 빵집에서 주머니란 주머니는 죄다 터는 꼴불견을 연출했는데, 그럼 그게 다 뻘짓이었단 말야?"
"미안해. 지금 같이 다녀오자."
"너님 혼자가면 안될까요? 전 방금 집으로 귀환하신 몸이라 피로가 쌓여있습니다."
"이렇게 귀여운 여동생을 무서운 밤길에 혼자 나가라고? 우와 동생 걱정은 털끝만큼도 안하네, 오빠 맞아?"
"내가 고등학교를 다닌 미국땅은 여기보다 치안이 후졌거든요? 여자가 맘놓고 밤길을 다닐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가 우리나라인데 무서운 밤길은 무슨."
"그럼 그냥 이유없이 같이 가줘."
"싫습니다."
"붕어빵 사줄께."
"슈크림반 팥반."
"그럼 비싸."
"그럼 안갑니다."
"알았어 사주면 되잖아. 서른이나 먹어서 이십대인 동생한테 붕어빵이나 뜯고 말야."
"내가 누구때문에 빵집에 두번가는데, 불평은 내가 해야 되니까 옷이나 갈아입어."
"알았어. 티비보고 있어."

동생은 그러면서 기껏 끌러둔 내 넥타이를 조여주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나는 한숨을 쉰뒤에 일어나서 패딩 점퍼를 다시 껴입었다. 동생은 곧 차려입고 나왔고 부모님은 동생의 차림새에 목도리와 털모자를 추가시켰다.-바깥에 추우니까 단단하게 차려입고 가야지, 안그러면 감기걸린다.- 집에 들어오기 전에 비해서 바깥은 더 추워져있었고 우리는 손을 주머니에 깊숙하게 찔러넣고 빵집으로 향했다.

빵집에서 우유식빵을 쿠폰과 바꿔서-부당하게도, 이 식빵은 내가 들게되었다. 가위바위보는 악마의 게임인게 분명하다. 거기에, 삼세판이라는 규칙은 악마의 규칙임에 틀림없다. 분명 첫판은 내가 이겼다.-털레털레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나는 동생이 약속한 팥과 슈크림이 세개씩 담긴 붕어빵 여섯개가 들은 종이봉투를 획득했고,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띄운채, 한개씩밖에 못먹었다. 여동생이 두개를 해치웠고, 두개는 부모님의 것이었다. 적어도 네개는 내것이어야함이 분명했지만, 이 영악한 엘리트님께서는 내가 식빵을 든 손을 바꾸느라 내게서 붕어빵을 잠시 맡아둔 사이에 두개를 몰래 빼갔다.-그리고는 뻔뻔스럽게도 사랑하는 동생에게 그정도도 못주냐고 투덜거렸다. 이건 내 정당한 권리였다고!- 나는 투덜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께 붕어빵 두개를 드리고 조금 있다가 가족과 함께 나란히 둘러앉아서 케이크를 잘라 먹은뒤에 잠이 들었다. 내일은 크리스마스다.


    아침에 일어나니 가족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었다. 시간은 아침 7시. 크리스마스라서 가족들 누구도 일찍 나갈일은 없는것 같다. 아침에 딱히 할일도 없고, 크리스마스 아침에 컴퓨터를 하는것도 꼴사납게 느껴져서 나는 간단하고 씻고 어제 쿠폰과 바꿔온 우유식빵세쪽과 우유한잔을 마신뒤에 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친구놈과의 약속은 세시쯤에나 시작이었고, 그냥 간단하게 뒷산의 운동기구가 모인곳까지 다녀올 생각이었다.

평소에 가끔 올때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크리스마스라서 다들 뻗어버린건지 운동기구가 모여있는곳에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덕분에 모든 철제 운동기구는 차가웠고, 나는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기구들을 건드렸다. 조금 땀이 나기시작하는걸 느끼고는 기구 사용을 그만 두었다. 뭐랄까. 아침부터 땀을 흘리는것은 내 취향에 벗어난 행동이고, 게다가 오늘은 약속까지 잡힌 크리스마스였다. 내려오는 길에는 사람들을 한두명 볼 수 있었다. 나는 간단한 아침인사를 건네면서 산을 내려왔고, 집에 거의 도달하고 나서야 내가 아침인사를 좋은 아침입니다가 아닌 굿모닝을 해버렸다는것을 깨달았다. 뭐 이정도는 별 문제 없겠지.

집에 돌아가보니 한시간 가량이 지나있었다. 부모님 두분은 깨셔서 아버지는 어제 신문을, 어머니는 아침을 준비하고 계셨다. 나는 점퍼를 벗어서 옷걸이에 걸어둔 후에 동생을 깨웠다. 미인이 되기 위해서는 더 자야한다는 잠꼬대를 무시한뒤에 창문을 열어 차가운 아침공기와 여동생의 만남을 주선시켜주었다. 부끄러워서 이불속으로 숨는 동생의 이불을 뺏는것으로 내가 친히 주선한 미팅은 흡족하게 마무리 되었다.

아침을 먹고 컴퓨터를 켜서 메신저에 접속하자 친구놈이 있었다. 나는 대화창을 열어서 약속에 대해서 세부적인 논의를 했고, 최종적으로 세시 반에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다음에는 노래방에 가서 솔로 둘이 궁상맞게 노래를 부르고 영화관에 가서 최근에 개봉한 SF영화인 지구가 빨빨거리며 살아다니는 날을 관람한 후에 친구가 잘 아는 맥주집으로 가서 수다를 떠들다가 축구를 보고 각자 집으로 들어가는 참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지극히 솔로다운 계획이었다. 이 모든 논의를 옆에서 지켜본 동생은 궁상맞고 참신한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계획이라는 평가를 내렸지만 여동생 본인도 솔로라서 그 이상의 비평은 받지 않았다. 뭐 참신하지 않더라도 재미만 있으면 되니까 별 상관은 없지.

시간은 꾸역꾸역 지나가더니 세시가 되었다. 나는 머리를 감고 옷을 두겁게 걸쳐입은뒤에 여동생의 배웅을 받으며 느린 걸음으로 지하철역으로 가서 세시반까지 기다렸다. 친구는 세시 이십오분경에 도착했고 우리는 대충 서울 시내로 가는 지하철에 올라섰다. 강남역부근에서 내려서 노래방을 가서 어깨동무를 하고 캐롤 열몇곡을 불러제낀다음 예매해둔 영화를 봤다. 영화는 그럭저럭 재미가 있었다. 지구라는 행성이 진짜로 빨빨거리면서 은하계를 여행하려는 미친계획을 짜는통에 거기에 살고 계시는 전 인류와 동물씨들이 지구 내부에 찾아가서 지구의 영혼과 한판 떠서 닥치고 본래 궤도를 돌게 만든다는 조금 정신이 나간 영화였다. SF라더니 거의 코미디 수준이었는데 우리 둘다 별로 불만은 없었다. 우리는 영화관 출구에 있는 쓰레기통에 깔끔하게 빈 팝콘통과 얼음까지 씹어먹어서 완벽하게 비어있는 콜라통을 버리면서 잡담을 떠들었다.

"그나저나 이 정신나간 시나리오는 어떤놈이 쓴건지 얼굴을 좀 보고싶다. 이거 미국에서 흥행은 했냐?"
"의외로 흥행한 모양이던데?"
"신기하군. 니가 보기에 이 영화가 양키한테 먹힐만한 영화냐?"
"미국땅 안밞은지 몇년째인데 그걸 나한테 묻냐, 차라리 지나가는 외국인한테 물어봐."
"나 영어 못해. 니가 물어봐."
"귀찮아."
"꺼져."
"즐"
"즐"
"..."

이런식의 대화로 시간을 따먹으면서 우리는 친구가 미리 예약을 해둔 맥주집으로 걸어갔다. 축구를 안락하게 보면서 맥주를 마실수 있게해둔곳은 한국에 흔하지 않다. 여기가 축구에 미쳐사는 남자들이 깔려있는 유럽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런 희귀한 맥주집을 이 친구는 한개 알고 있었고, 심지어 단골이기까지 했다. 케이리그를 보러가도 괜찮겠지만 지금은 시즌도 끝났고, 설사 시즌중이라도 올해 크리스마스는 주중이라서.

"근데 오늘 축구 하냐?"
"글쎄다. 가보면 알것 같은데."
"뭐 축구 안해도 떠들면서 우리의 불행을 안주삼아 씹고 맥주를 마시면 되니까 별 문제는 없겠네."
"왜 하필 우리의 불행이냐."
"축구 못보잖아."
"..."

우려한대로 축구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술집의 맥주는 마실만한 맛을 자랑하고, 크리스마스에 칙칙한 남자 두명만 방문한것을 안쓰럽게 여긴 주인이 무료로 안주를 주었기때문에 슬프긴 하지만 우리는 나름 행운아였다. 축구이야기-발렌시아 바르샤랑 레알한테 발렸다며? 니들 우승은 못하겠네.-부터 시작해서 정치이야기-공성전 끝내주던데?-까지, 뇌속에서 떠도는 이야기란 이야기는 다 끄집어 내면서 떠들던 우리는 순간적으로 이야기거리가 떨어지는 어색한 순간을 맞이했다. 수십초간 서로 자신의 맥주잔만 바로보던 우리는 잠시 테이블을 떠서 머리를 회전시키기로 했다. 나는 속을 비우고 새로운 맥주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위해서 화장실로 향했고, 친구는 담배를 한대만 피우고 온다고 바깥으로 나갔다. 오분뒤에 손을 두번씩 씻어서 청결한 위생상태로 테이블로 돌아온 나는 무려 오분씩이나 더 친구의 귀환을 기다려야 했다. 평소 담배 한대에 칠분정도밖에 시간이 걸리지 않는 사람이 십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나는 불안해서 바깥에 나가보기로 했다. 바깥은 겨울다운 추위를 자랑하고 있었고, 바깥에 오랜시간 머무르고 싶은 마음따위는 싹 가시게 해주는 날씨였다. 입구 바로 앞에 친구가 없어서 나는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 담배를 입에 물던가 손에 들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내가 찾은 친구는 담배를 입에 물거나 손에 든 모습은 아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과 같이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정정, 그건 성인이 아니라 꼬맹이 하나였다.

"...그러니까 이 최첨단 시대에 성냥이나 쥐어주고서 여기로 안돌아 온다는거야?"

심지어 질문까지 하고계셨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친구에게 다가가서 뭐하고 있냐고 물었고 친구는 아무 말 없어 몸을 조금 움직여서 자신의 대화상대를 나에게 노출시켰다. 그나이 또래가 가질법한 레벨보다 조금 더 많은 귀여움을 가지고 있는 여자아이였다. 몸은 털모자가 달린 두터운 오리털 점퍼로 둘러져있었고, 귀여운 핑크색 벙어리 장갑을 쓰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추워보이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한가지 오류라면, 왼손에 성냥걉을 두개나 들고 있다는것이었다.

"얘는 왜 이 시대와 장소에 어울리지않는 성냥갑을 두갑이나 들고있냐?"
"어른 둘이 자기한테 성냥갑 두갑 쥐어주고 사라졌다는데..."
"부모냐?"
"아니라고 빌고싶긴한데, 일단 생물학적으로는 부모인 모양이다."
"생물학적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뭐냐?"
"어린애가 자기 부모를 어른 두명이라고 표현하는거 본적 있냐?"
"없긴한데, 그러면 생물학적으로 부모일 가능성도 없는거 아냐?"
"...조금 있다가 이야기하자, 꼬맹이앞에서 따지지말고."
"어."

친구는 손을 들어서 대화를 중단 시킨뒤에 다시 아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어린애답지않은 얼굴이었기때문에 나는 영 어색한 기분을 느껴야만했다. 친구는 몇마디를 더 주고 받더니 나에게 이 아이를 일단 술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몸이라도 녹여주자는 제안을 했고, 나는 별 반대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친구는 이 술집의 단골이었기때문에 주인은 우리가 있는 동안만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아이를 흔쾌히 맡아주었다. 우리는 우리 자리로 돌아가서 아까의 대화를 이어나갔다.

"자 이제 저 아이를 두고간 어른 두명씨가 생물학적인 부모인 이유를 언급해봐."
"주저하기는 했지만 대화의 초반에 엄마라는 단어를 썼거든."
"그 어른 두명을 지칭하는게 아닐지도 모르잖아."
"맞아, 근데 내 감으로는 그들이 부모이긴 부모일것 같아."
"어떤 정신나간 부모가 아이한테 크리스마스 선물로 춥고 잔혹한 현실을 선물하냐?"
"저아이 부모."
"...내가 졌다, 그래서 저 아이 어쩌려고? 경찰에 맡기려고?"
"아니."
"설마 너님이 기르시게요?"
"모르겠는데."
"그냥 속편하게 경찰로 넘기면 알아서 찾아주거나 시설에 맡겨서 양부모를 얻을수 있을텐데?"
"내가 그 루트를 신뢰하지 못한다는거 니가 더 잘 아는 사실이잖아."
"하긴, 그 루트 잘못 타면 깡패랑 창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해줬지."
"어, 그리고 난 어쩌다가 만난애까지 그렇게 만들긴 싫어."
"난 못 돌봐준다. 일단 난 분가도 안했다고."
"니 집 사정이야 내가 잘 알지. 부탁할 마음 없다."
"그럼 진짜 어쩌려고?"
"일단 오늘밤은 우리집에서 재울생각인데. 그 다음은 모르겠다."
"크리스마스라서 그런거냐?"
"뭐가?"
"아니다... 두잔만 더 마시고 뜨자. 곧 있으면 경찰 단속 나오겠네. 그러면 저기 맘 좋으신 주인씨 고달파진다."
"난 이것만 마실련다."
"어."

그 대화를 끝으로 나와 친구는 단숨에 약속한 잔을 비웠다. 더치페이로 계산을 하고 주인이 준 박하사탕을 까먹으면서 바깥에 나오니 그새 더 추워져있었다. 나는 거부하는 친구를 강제로 택시에 태워서 보냈다. 우리집과 별로 멀지 않아서 택시비용은 잘 알고 있었다. 친구는 나랑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했지만, 난 그 꼬맹이를 들고서 지하철을 탈 자신이 별로 없었다. 친구가 무슨 선택을 한건지는 모르겠고, 이해도 되지 않았기에 더욱 자신이 없었다. 택시가 커브길을 돌때까지 손을 흔들어준뒤에 나는 지하철역으로 향하면서 핸드폰을 꺼내서 집에 전화를 했다. 넉넉잡아 한시간반이면 도착한다고 말해두고 전화를 끊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러브 픽셔널리도 보지 못하고 괴상한 사건과 함께 마무리되어버렸다.


    그뒤로 한달간 나랑 친구는 전혀 만나지 못했다. 연말에는 망년회가 사람을 미치도록 굴린다면 연초에는 각종 계획과 친척집 순회가 사람을 연말의 두배정도로 굴리기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친척형이나 누나가 없는 말그대로 최고참이라 애인은 있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결혼이야기에 직장내에서 승진이야기까지 온갖 질문에까지 대답하느라 더욱 진이 빠져버린다. 그러한 사정으로 1월말이 되서야 나는 친구에게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목소리에 연초의 피곤함이 묻어나기는 했지만, 그걸 제외하면 별로 변한것이 없는 친구의 목소리는 반가웠고, 전화비도 아낄겸 바깥에서 만나기로 했다.

새해의 첫 만남은 경악으로 시작되었다.

"너 임마 눈이 왜그래?"
"응?"
"눈! 눈말이다! 네놈 눈! 아이! 그거 왜그래?"
"아 좀 안좋아 보이냐?"
"좋고자시고를 떠나서 눈매가 왜 한달만에 바뀌어있냐고!"

한달만에 만난 친구는 인상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얼굴 전체를 날카롭게 보이게 하던 눈매가 둥글둥글하게 변해버렸기때문이다. 대체 무슨짓을 하면 저렇게 되는걸까해서 물어보니 성형을 했단다. 평소에 자기 외모에 만족하고 성형과는 거리가 멀던 인간이 성형을 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들으면 니가 웃을텐데. 기가 막혀서."
"한달사이에 무슨 짓을 저지르셨습니까."

예고당한대로, 들은 내용은 기가 막혔다.

"그 길고 긴 이야기를 짧게줄여서 말하면 그 꼬마아이를 무려 네 여동생으로 호적에 올리고, 니 눈매가 무서워서 자꾸 우는 바람에 웃게 해주려고 눈매를 성형했다고? 크리스마스 난입을 사랑하던 나의 친구는 어디로 사라진거냐. 너 임마 도플갱어지?"
"아니. 애석하게도 진짜다."
"진짜 도플갱어 아니야?"
"아니야. 정 뭐하면 너랑 나만 아는 비밀들을 세시간동안 큰 목소리로 낭독할수도 있다."
"그만, 믿어주마."

나는 만담같은 대화에서 먼저 백기를 든 후에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커피를 마셨다. 커피맛이 상당히 괴상했다. 커피 원두가 살아나서 혀를 끈적하게 휘감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간신히 삼키고 나서 궁금한점들을 물어봤다.

"대체 어쩌다가 길에서 만난 꼬맹이를 호적에까지 올리게된거냐?"
"그게 말이지, 난 처음에는 내가 말한대로 며칠만 재워주고 친부모를 찾아줄 계획이었거든..."

내 커피를 뺏어마시면서 친구가 말해준 이야기는 고난과 예측불가의 이야기였다. 재워주는 처음 며칠동안 친구는 경찰서와 우리가 갔던 술집이 있는 동의 동사무소와 그 주변 지역의 동사무소를 꼬맹이 사진들고 찾아다니면서 친부모를 찾아다녔다. 동사무소쪽은 꽤나 빠르게 백기를 들었고, 경찰서는 조금 더 분투하긴 했지만, 아직 지문 등록도 안한 꼬맹이라서 결국은 백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시설에 보낼까 했는데 부모님이 연초에 집에 들어오지않는 자신이 괘씸해서 친척들을 보냈고, 꼬맹이는 얼떨결에 같이 친구네 본가에 따라가게되었다. 친구는 거기에서 온갖 추궁을 당했다. 동거한 여자가 낳고 튀었냐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납치라도 했냐는 질문까지 받았고, 친구는 한참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했다.-길에서 떨고 있길래 데리고 온거라구요!-모두가 꼬맹이의 습득과정을 납득하자 뒷일에 대한 논의가 나왔다. 친구는 한참동안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떠들어댔고, 막판에 가서 성과가 하나도 없었노라고 힘이 빠진 목소리로 고백했다. 모든 이야기를 듣던 친구의 부모님은 친구에게 "네놈이 주워왔고, 아무리 찾아도 보내야할 곳이 없다면 네놈이 직접 키워야지."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운명론을 꽤나 신봉하시는 분이었고, 꼬맹이와 친구가 만난것을 운명비슷한것으로 판단해버리신것이다. 그뒤에 서울로 올라오기 전까지 호적등록을 비롯해서 모든 절차가 끝나버렸고, 친구는 졸지간에 동생이 되버린 꼬맹이를 양육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거구만, 뭔가 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래."
"그래서 네 부모님은 네가 그 '동생'을 양육하길 바라신다는거지?"
"귀찮게도 말이다."
"일이개월뒤면 새학기가 시작될텐데, 학교 수속은 해뒀냐."
"아 그거 깜빡했다."
"하러가자."
"응?"
"지금 하러가자고, 지금이면 교육청도 문 다 열었으니까."
"어...어, 그래."

나는 커피컵을 흔들어서 커피가 남아있나 확인했다. 컵은 비어 있었고, 나는 주변에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커피컵이 쓰레기통 바닥에 부딫히는 소리가 들렸고, 그 소리는 곧 친구의 발소리가 덮었다.

"야 근데 교육청이 어디냐?"

내가 물었다. 날씨는 조금 풀려서 덜 추웠다. 교육청 가는길에 눈 성형한 이야기나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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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어찌 올렸습니다.

사실은 아무런 사건도 없이 그냥 평범하게 어물쩍 끝나는 날들을 쓰고 싶었는데 다 쓰고서 주변에 읽어보라고 했더니 심심해서 졸린다는 의견이 하나 나와서 그냥  대충 사건을 하나 집어넣었습니다.

크리스마스 맞아서 쓴다고 쓴건데요. 재미는 있는지 모르겠네요.

재밌게 읽으셨다면 좋겠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즐겁게 지내시길.

by 은혈의륜 | 2008/12/25 10:00 | | 트랙백 | 덧글(8)

크리스마스 맞이 문패 교환



08 My Only Wish (This Year) - Britney Spears from Ultimate Christmas 2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노래중 하나인 My Only Wish 올려둡니다.

크리스마스용입니다. 올해 남은 시간동안 쓸수도 있고,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면 원래대로 복구시킬수도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서 짧은 이야기를 하나 쓰고 있는데, 약간 멈춰있습니다. 오늘내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요새 산타는 모름지기 저래야합니다. 털복숭이 할아범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한다구요!

P.S - 블로그 이름에도 약간의 수정이 가해졌습니다.

by 은혈의륜 | 2008/12/24 12:20 | 근황 | 트랙백 | 덧글(14)

2008년 내가 추천하는 이글루 TOP10

이글루스TOP100

난 원래 10개 하라 그러면 맨날 모자라게하는 불량학생임 ㅇㅇ 

그래서 나님은 오늘도 갤질만 하고 블로그에는 뻘글만 올립니다 예아!

이틀뒤에 크리스마스야 슈ㅣ발 어헝헝어어허엉헣

근데 전 축구나 보러감. 가서 최다인원 캐롤 부르기 기네스 기록의 일원이 될거라능 우와왕.
크리스마스 새벽에 일어나서 복도에 날씨보러 나갔는데 이런 산타랑 마주치면 참 재밌을텐데 ㅇㅇ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by 은혈의륜 | 2008/12/23 12:53 | 트랙백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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