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창 나름대로 파고들기.

잡담. 생김.

현시창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 웹에서 가장 흔하게 쓰이는 단어들을 꼽자면 들어갈 이 말은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인 마이클 스코필드가 한 말인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라는 말에서 나왔다. 초기에는 꿈높현시 라고 줄여서 표현하기도 했지만 이제 대부분이 그저 간단히 현시창이나 현실은 시궁창이죠 예에-. 이러고 만다.

대부분이 그냥 넘어가면서 웃고마는 이야기지마는, 파이스님이 지적한 재밌는 부분은 간만에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왜 현실은 시궁창이 된걸까?

웹과 현실이 다른점을 딱 하나만 꼽자면 외면의 창조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이야기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사람들은 각자의 타고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사람들은 성형을 해서 바꾸긴 하지만, 그 성형수술들이 당신의 두개골을 완전히 드러낸후 조각해서 다시 얼굴에 끼워주는 기술이 아닌이상,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어떠한 표식이 남아, 오랜시간 알고 지낸 사람들은 성형을 한 후에도 별 문제없이 알아보기도 한다. 웹에서는 이 규칙이 통용되지 않는다. 누구던지 웹에 처음 들어오는 순간에 그들은 계란귀신과 다를바가 없다. 당신이 웹상에서 생산하는 콘텐츠들로 당신은 당신의 웹적인 외모를 채워나간다. 따뜻하고 좋은 글을 쓰면 사람들은 아무래도 당신을 온화하고 선한 인상의 따뜻한 사람으로 그리게 된다. 달빠와 같은 글을 쓰면 그냥 중2병에 걸린 한심하고 조그만 땅꼬마나 뚱뚱하고 여드름이 잔뜩난 돼지로 연상하는 사람이 많고, 날카로운 글로써 사회를 비판하면 당신은 그들에게 수첩을 쥐어주고, 안경을 씌워준뒤에 취재의 현장으로 내몬다. 한손에는 수첩, 한손에는 볼펜, 주머니에는 녹음기와 목에는 사진기가 걸려있다.

파이스님이 말했듯이 우리는 이곳에서 내면의 충돌을 경험한다. 웹상에서 일어나는 가장 독특한 행위다. 자신의 내면이 다른사람들의 의견과 평가에 의해 치장되지 않은채 다른 사람의 내면과 충돌한다. 마주치는것에 나아가지 않아서, 우리는 다른사람과 충돌하여 자신의 내면에 내밀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내면을 단단하게 잡아줄 지지대를 얻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 나가면 당신이 저런것을 얻을 가능성이 극히 적어진다. 우리는 현실에서 목걸이를 사고, 향수를 뿌리고, 귀걸이를 걸면서 외면을 치장할 수 있다. 값비싼 핸드폰을 손에 쥐고, 벤츠를 운전하면서 자신의 부를 외면에 드러낼수 있다. NYT나 Economist를 손에 들어서 자신이 지적으로 모자르지 않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고, 일명 사과머리를 하면서 자신은 유행에 뒤쳐지지 않는 사람이라는것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현실에서 내면을 채울 그 무엇도 얻기가 힘들다. 좋은 강의와 따뜻한 말은 현실에서도 쓰이는 것이지만, 그것들의 출현빈도는 웹상에 비해서 극히 적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가 아닌, 한정된 자원내에서밖에 얻지 못한다.

우리가 웹상에서 얻을수 있는것을 현실에서 얻을수 없다는것은 인간에게는 굉장한 아이러니다. 특히 어느정도 평등이라는 개념이 주입된 인간과 그 커뮤니티에게는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왜 현실과 웹은 평등하지 못한거지? 대체 내가 웹에서 얻은것들을 현실에서는 전혀 얻을수 없는거지? 이러면 현실은 웹보다 나은게 없는 시궁창이잖아? 썩었어! 현실은 시궁창이야! 라고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아예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웹과 현실의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고, 한곳에서 얻는것을 다른곳에서 얻을수 없을때, 그 다른곳은 누군가에게는 냄새나고 썩어빠진 시궁창이 되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우리가 인지하고 있던 인지하고 있지 못하던 우리는 현실을 향해 웹상에서 농담처럼 말한다. "현실은 시궁창."

P.S - 하지만 덕후들 사이에서는 3D는 2D 히로인을 따라잡을수 없어! 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뿌우 'ㅅ' 현실에 아테나 누님과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것과 같은 이치죠.

P.S 2 - 웹과 연관시킨 이야기기에, IT 밸리로 보냅니다.

by 은혈의륜 | 2008/10/12 14:02 |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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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쿠레나이 at 2008/10/12 15:14
아아, 현실은 시궁창. 애니메이션에나 나올법한 인물이 어디있겠냐만은 ..OTL..
Commented by 월광토끼 at 2008/10/12 15:3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에 대한 상상 및 의인화 라는게 얼마나 큰 요소인지.
Commented by moastone at 2008/10/13 00:53
재미있게 잘 쓰셨네요. 글로 창조된 자신의 이미지와 현실의 이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둘 사이의 거리가 최소화되면 현시창이란 소리가 안나오겠지만 현실은 정말 그렇지 않죠. :)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10/13 09:08
쿠레나이/ 애니는 환상이죠.

월광토끼/ 그래서 모두가 정모를 두려워하죠. 사실 현실에서 무대끼는 관계라도 자신이 모르는 부분에는 상상과 의인화로 대체하면서 모두가 살아가고 있지만.

moastone/ 그 두개의 거리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확실히 현시창이라는 단어는 줄어들겠지요.
Commented by phice at 2008/10/13 10:42
좋네요.

개인적으로는 내면이라도 알차고 멋지다면 충분히 알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상관없지 않나라고 가끔 생각하는데, 대부분 현실에선 흔치 않은 매력남매력녀가 온라인이라고 갑자기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좀 안타깝죠.

여담이지만, 사실 가시창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 멀쩡한데 가상에선 강아지 사촌뻘되는 분들.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10/14 06:18
phice/ 사실 현실에서 막장짓하는데 온라인에서 개념가이가 되는 인간은 극소수죠(....) 그나저나 가시창은 익명성의 페해를 보여주는 좋은 에가 되겠네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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