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는 무너져 내리는 날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무너져 내리는 날이 있다고 한다. 이건 내가 친하게 지내던 대학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로 그 선배는 다섯번의 자살기도가 실패한뒤 나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었다. 사실 이 문장을 제외하고도 다른 절절하게 아픈 문장들이 가득 채워진 편지 한장을 받았지만 다른 문장이 생각나기에는 시간이 너무 지나버렸다.

야근을 위해서 사무실의 불을 끄고 내 책상에 덩그라니 놓여진 스탠드를 하나 더 켰다. 두개의 불이 조금 혼란스러웠지만 눈을 몇번 깜빡이자 곧 적응이 되서 괜찮았다. 발열이 심해 잠시 꺼둔 노트북의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윈도우가 구동되는 동안 나는 종이컵에 뜨거운물을 따른후 현미녹차 티백을 떨궈넣었다. 컵 밖으로 물이 조금 튀었지만 별로 신경쓸 정도는 아니었고, 노트북에도 튀지 않았다. 손으로 털어낸 후 그 손은 양복바지에 문질러 닦았다. 윈도우즈는 완전히 켜져서 내게 비밀번호를 요구하고 있었다. 나는 약간 긴 비밀번호를 자판을 두드려 넣은뒤 티백으로 우려낸 현미녹차를 마셨다. 아직은 조금 뜨거웠다.

야근은 삼일째다. 첫날은 자청한 것이었지만 둘쨋날과 오늘은 원래 내 담당이었다. 내 옆자리와 앞자리에 앉은 동료들은 어느정도 걱정을 했지만 나는 가서 맥주나 마시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등을 떠밀었다. 그들이 나가 나 혼자 남은 사무실은 당연히 적막했다. 유령과 귀신과 정령들이 가득 채우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 보이지 않는이상 그들은 공기보다 미천한 존재일 뿐이다. 그들의 눈에도 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나 역시 그들에게는 공기보다 미천한 존재일것이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자 나는 사무실의 불을 내렸다.

야근이 계속되자 눈이 침침해졌다. 사무실에 있는 간이 화장실로 걸어들어가 세수를 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그 선배가 생각났다. 그 선배의 팔목에는 가느다란 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처음 만난날 물었을때 그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그 선배가 네번째의 자살시도를 실패 했을때 나는 그것이 자살을 기도한 흔적이라는것을 알았다. 옆에 자살을 갈구하는 인간이 있다는것은 흥미로웠다. 심리학을 전공하던 학생으로써 그런 사람은 가장 흥미로운 대상이었고, 나는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거짓 친분을 쌓다가 진짜로 친해져버렸다.

눈을 두어번 깜빡이자 그 선배는 사라지고 다시 스탠드 두개가 비추고 있는 내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너저분하게 널린 종이쪼가리와 종이컵, 여기저기 펜이 굴러다니는 지독한 꼬라지였다. 나는 한번 피식 웃고는 서류를 다시 집어들었다. 오늘만 하면 괜찮을거야. 오늘만 하면 괜찮을거야. 집에는 아무일 없을거고.





내게는 대학 선배가 하나 있었다. 다섯번의 자살 미수 경력을 가진 특이한 선배로써 나에게 사람에게는 어느 하루,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날이 있다고 말해준 사람이었다. 지금 그 사람은 뭐하냐고?

지금 내 꼬라지를 나보다 먼저 실천하셨다.

쿵.

by 은혈의륜 | 2008/09/03 11:40 |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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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blus at 2008/09/03 16:23
아.쿵.
Commented by 시언 at 2008/09/03 19:51
아하하하^^;
Commented by 연우 at 2008/09/04 03:24
으음?
제가 글을 너무 어렵게 읽나요?;;;ㅠㅠ
Commented by phice at 2008/09/05 12:31
쿵. 의자 떨어짐?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은 ... !
/_\ 무섭슴돠
Commented by 은혈의륜 at 2008/09/06 02:20
blus/ 쿵. 저 단어로 끝내보고 싶었지요.

시언/ 읽기 좀 거북하셨다면 죄송(....)

연우/ 주인공이 막판에 죽은거라고 생각하시면 제대로 읽으신거긴 합니다만(....)

phice/ 의자가 아니라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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