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7월 02일
비가 내리는 밤.
나는 가끔 비가 내리는 밤을 마법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입밖에는 낸적이 없는 이 생각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서 영원한 진리처럼 받아들여져왔다. 그런 밤을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것은 역시 조용한 음악이다. 마침 지금은 비가 오고 조용한 음악들이 헤드셋을 통해서 흘러나온다. 완벽한 밤이다. 단지 읽을 책과 와인 혹은 차 한잔의 부재가 아쉬울뿐. 집에 있다는것에 감사하자. 바다건너 멀고 멀었던 미국에서 나는 그리움을 마셨던, 와인과 차 한잔이 필요없던 존재였으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는 시끄러운 음악을 연주하지만 가장 자주 듣는것은 내가 윈도우 미디어 플레이어에 저장한 조용한 노래 목록일것이다. 아침을 제외하고는 (가끔은 아침에도) 거의 모든 시간에 듣는 이 목록은 내가 혹시라도 가질 불안감을 덜어준다. 헤드셋을 벗고 노래를 듣고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고 있다. 빗소리에 섞인 조용한 음악은 이 밤을 와인과 차 없이도 온전하게 만들어 줄 고귀한 마법의 첫째 자식이지만 그 마법을 위해서 가족의 아름다울 꿈을 희생번제로 바치고 싶지 않다.
빗소리는 항상 바람소리를 동반한다. 비와 항상 함꼐 다니는 이 친구는 빗소리에 어울리는 또다른 좋은 소리다. 조용한 음악, 빗소리, 잔잔하지만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바람소리. 이 모든것에 찬사를 보낸다. 경배한다. 이때만은 이 모든걸 창조한 하늘에 계신 창조주에게 경배를 드리자. 신이시여, 당신은 정녕 위대한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내 머릿속에서 시가 흘러나오는 횟수가 뜸해진건 언제부터일까. 예전에는 이런 마법의 밤에 시를 쓰는것은 내가 가진 하나의 관례였다. 어지럽고 독한 단어들로 시를 쓰고, 그런 하급의 언어를 통해서 나는 이 마법을 찬미했다. 나는 여전히 이 마법들을 찬미하지만 더이상 시가 흘러나오지 않는다. 나는 다양성을 터득한 것을까 아니면 유일한 가능성마저 잃어버린것일까. 빗소리가 강해졌다.
빗소리가 들린다. 바람소리가 들린다. 헤드셋에서는 음율이 아름답게 흘러나온다. 성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뒤집어 쓴 듯한 느낌이다. 고귀하다. 나는 이 고귀한 밤을 사랑한다. 많은 날의 밤들이 이렇게 고귀하기를. 내가 다시 미국으로 떠나 그리움을 마시는 밤을 지샐때 이 고귀함으로 내게 그대들이 배풀수 있는 최상의 위로를 내 손에 건네주기를. 나는 내 그리움으로 잔을 채워 기꺼이 그대들의 영원함에게 건배하겠다.
비가 오는날의 밤이 진정으로 좋은것은 거리에 인적이 사라진다는것. 인간은 자신들이 쌓아올린것이 내뿜는 적막함에 숨이 막히기도 하고, 그 조용함에 탄복한다. 인적이 없는 거리를 반드시 한번 걸어보라. 그것은 인생동안 한번은 해야 할 일이다. 어디라도 좋으며, 비를 맞고 있다면 더욱 좋다. 내가 말하는것이 당신의 영혼조각에라도 안식을 부여해주기를.
이런 마법의 단 하나의 단점이라면 내가 손수 죽인 그리움이 부활한다는것이다. 가슴이 욱신거리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하고, 심지어는 소리내어 울고 싶게 하는 그런 그리움들. 나는 이미 이런 그리움에 한번 지배당해, 귀국하는 기내에서 울었다. 소리를 죽여서 꺽꺽거리며 울고 싶은 기분을 간신히 참아가며 울었다. 오늘은 가슴이 욱신거린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이미 다른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고 있고, 나는 집의 자그마한 방에 앉아서 이 글을 두드리고 있다. 마법의 밤이여, 날 치유해다오. 나도 안다. 사실 이 밤은 이 탐나는 제물을 결코 치유하지 않을것이라는걸. 이 제물이 자라서 내가 그리움에 미치면 그때 이 파편들을 거둬갈지언정 치유해주지는 않을것이다.
나는 내 가슴을 부여잡았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부여하는 이 녀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나 역시 내 스스로를 잠재워야 하겠지. 안녕 내 짧았던 하나의 날이여. 나는 너와 작별 인사를 한다. 내가 리렌시아와 작별하는것처럼. 나는 너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한다. 내가 인간에게 이 손을 흔들지 않기를 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이 손을 흔들지 않기를 빈다.
마법의 밤이여, 비가 내리는 밤이여. 나는 그대를 찬미하니 그 구름뒤의 달빛을 약간 베어서 내 잔에 채워주게. 마시고 그것으로 내 상처를 치유받으리다. 내게 자비를, 구원을, 그리고 절망을.
밤이 깊어간다. 마법진은 조용히 빛을 뿌린다.
# by | 2008/07/02 23:26 | 글 | 트랙백 | 덧글(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는 훼이크고 약간 북유럽 삘이 난다고 해야되나. 그러면서 켈트신화쪽 느낌도 남.
내 지갑에서 비가 내린다... <야! 모처럼 진지한 글인데 덧글이 이럼 안돼!
요츠바랑/ 나보고 달빠라니 뒤질래여 'ㅅ'ㅗ 근데 난 켈트신화는 읽은적 없음.
바르세/ (....) 대체 난 무슨이미지 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