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11일
교통사고 이야기.
할짓이 없는 토요일이니 그냥 옛날이야기나 올리게 된다.
초등학교 4학년, 7월 20일인가. 어찌됬건 그 부근의 가장 가까운 일요일.
그날은 부모님 두분다 벌초하러 가시느라 어쩌다보니 나와 내 동생 둘이서 교회 버스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죠.
교회 초등학생대상의 주일학교 마치고 그 나이의 애들답게 주위를 싸돌아다니면서 놀고 있었는데 우연히 본 시계는 이미 버스 출발 시각을 넘겨버렸더군요.
그때 버스를 놓치면 집까지는 그때의 걸음걸이로 대략 한시간 반을 걸어야 했으므로 저와 제 동생은 다급해져서 인사도 대충하고 교회 버스가 주차하는곳으로 달렸습니다.
- 도로는 이차선도로임
맵은 대충 이런데 교회쪽에서 나오는 계단을 내려와서 횡단보도를 건너가야했죠 'ㅅ' (제 그림실력은 개판임 'ㅅ' 중학생때부터 미술만은 계속 수우미양가중 양먹었음 'ㅅ')
교회가 좀 큰 교회라 일요일에는 교통량이 많아져서 교회차원에서 신호등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는데 건의가 매번 무시되서 신호등이 없었습니다.
어찌됬건 계단을 내려가보니 교회버스가 떠나려고 시동을 걸고 문을 닫기 시작하기에 저는 초등학생이 가능한 목소리로 빽하고 기다려 달라고 소리를 지른후에 도로를 가로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빨간선대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동생은 그당시에는 저보다 달리기가 느려서(지금은 뛰기 시작하면 제가 못잡아요...한살차이인데...) 제가 중앙에 도달했을때 즈음에 겨우 인도로 내려오고 있던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야한다는 일념하나로 도로를 가로지르던 저에게 뒤에서 누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위험해!"
위험하기는 개뿔. 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른쪽을 돌아보니까 청록색의 17인승 밴 한대가 저를 향해 달려오더군요. 그때는 아직도 느낌이 생생한데 차가 전조등도 안켰는데 전조등을 바로 쳐다보는것처럼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더군요. 그리고 저는 아픈거고 뭐고 그런거 느끼기전에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노란색 선이 제가 날아간 방향입니다. 저 거리가 대략 10~20 미터정도 되고 저는 말그대로 지구중력을 무시하고 훨훨 날았다고 하더군요. 날아가고 움직임이 없어서 죽은게 아닌가 수군거리는데 제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일어나면 미친듯이 아플것 같은데 사실 그때는 아무런 통증도 없었습니다. 약간 비틀거리면서 스스로 일어난 다음에 저는 버스를 향해서 걸어가기 시작했죠. 누가 옆에서 "너 어디가냐" 하고 묻기에 저는 "집에 가야되는데요." 라고 하면서 버스로 걸어가는데 어떤 대학생형이 제 팔을 잡고 억지로 끌어당겼습니다.
"니 병원가야지 어디가냐?"
"저 괜찮은데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가 없지만 그때당시에는 진짜 느낌이 멀쩡했거든요. 추측으로는 통각이 마비되었던게 아닌가 싶은데 어찌됬건 그 형은 사고를 보고 그자리에 선 택시의 문을 열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저를 태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택시기사분께 나는 멀쩡합니다를 요지로 한 헛소리를 몇십초간 늘어놓았고 택시기사아저씨는 그냥 거울을 하나 얼굴 앞에 비쳐줬습니다. (나중에 그 형한테는 부모님이 뭐 잔뜩 사들고 가서 후사했습니다. 같이 따라갔거든요. 교회에서도 알려져서 그형 이미지 참 좋아졌다고 기억하네요.)
얼굴 반쪽이 완전히 피범벅이 되고 오른쪽 이마부근이 깨져버린 몰골이 보이더군요.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나 사고 당한거구나. 그리고는 닥치고 병원까지 갔죠. 병원에 가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은뒤에 수술을 하고(한 열바늘 꿰맨듯) 일단 걸어다녀도 괜찮다고 해서 나가니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입니다. 주일학교 당담하시던 목사님인데 제 병원비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때당시 의료보험과 돈의 크기에 대한 개념이 없던저는 저금통에 만원이 있으니 그걸 보태자고 의견을 내서 크게 웃긴후에 그제서야 생각이 난 동생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일단 사고는 저 혼자 당한게 확실한데 동생이 어떻게 됬을지 걱정디 되기시작해서...
아는분이 곧 병원으로 데리고 온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기억에는 그날 동생을 못봤습니다. 결론적으로 안전하게 귀가했다고는 합니다. 그리고는 한 사나흘 병원신세좀 졌네요. 그게 제 스무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입원입니다. 그러고보니 병실로 간후에 간호사누님이 허락해서 목사님이 짜장면하고 군만두를 사줬군요. 그때 간짜짱 처음 먹어봤습니다.
제가 춘천살때 일인데 마지막으로 춘천에 갔을때는 저 장소에 제가 날아갔던 자리에 스프레이 뿌려둔게 남아있더군요. 그게 한 못해도 5년 전이니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르죠. 예전에는 저 삼거리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납니다 'ㅅ'
이건 여담인데 사고당시 가해차량의 브레이크가 몇초만 늦게걸렸어도 저는 착륙과 동시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상황을 다 들은 의사선생님이 입원다음날 와서 말해주고 가더군요. 그리고 운전사가 저를 받은 직후 내려와서 제탓이나 뭐니하고 욕을 해대다가 주위의 아주머니들한테 일방적으로 까였다고 합니다 'ㅅ' 주제는 "어른이 운전도 똑바로 안해서 애를 치고 할 소리가 아닌 소리를 해댄다" 였다고 하더군요. 경찰도 저한테 여러번 왔다가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길래 대답해 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게 사고 정황을 묻는 이야기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뭐 뻔한 패턴이죠 학교 선생님하고 애들이 우루루 병문안 와서 떠들고 놀고... 근데 그때도 여자애들 남자애들 두그룹 나뉘어서 따로오더군요 'ㅅ'
이 사고에서 제가 얻은건 머리의 상처뿐입니다. 어려서였던지 지금은 이마에 흉터자국 같은건 없고 다만 만지면 희미하게 느껴는집니다. 운이 좋은 케이스라 뭐 뼈가 나간데도 없고 하는데 가끔 두통이 찾아옵니다. 이 두통은 딱 하루 가는데 아침이 클라이맥스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완화됩니다. 가끔 그게 너무 심하면 학교 쉬는거죠 'ㅅ' 그리고 오후 2시에서 3시사이에 가볍게 머리가 아픈날도 많고요. 그냥 만성 두통하나 따라온겁니다. 저는 그냥 지병있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ㅅ' 이걸 지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뭐 저거 하나로 액땜한듯 그뒤에는 별탈은 없었습니다. 아 초등학교때 방송실에 불낸일에 중학교때 식목일 호출사건, 그리고 학교축제 농땡이사건도 있군요.... 그건 나중에 또 심심하면 다루겠습니다. 'ㅅ' 근데 보니까 전부 방송부 관련 이야기군요.
P.S - 그나저나 이번 여름방학에 춘천한번 가서 예전 닭갈비 단골집 가야되는데... 인공폭포부근에 있는건데 참 맛있었지요 'ㅅ' 저희 아버지 단골집이기도 했고....
초등학교 4학년, 7월 20일인가. 어찌됬건 그 부근의 가장 가까운 일요일.
그날은 부모님 두분다 벌초하러 가시느라 어쩌다보니 나와 내 동생 둘이서 교회 버스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죠.
교회 초등학생대상의 주일학교 마치고 그 나이의 애들답게 주위를 싸돌아다니면서 놀고 있었는데 우연히 본 시계는 이미 버스 출발 시각을 넘겨버렸더군요.
그때 버스를 놓치면 집까지는 그때의 걸음걸이로 대략 한시간 반을 걸어야 했으므로 저와 제 동생은 다급해져서 인사도 대충하고 교회 버스가 주차하는곳으로 달렸습니다.

- 도로는 이차선도로임
맵은 대충 이런데 교회쪽에서 나오는 계단을 내려와서 횡단보도를 건너가야했죠 'ㅅ' (제 그림실력은 개판임 'ㅅ' 중학생때부터 미술만은 계속 수우미양가중 양먹었음 'ㅅ')
교회가 좀 큰 교회라 일요일에는 교통량이 많아져서 교회차원에서 신호등 설치를 건의하기도 했는데 건의가 매번 무시되서 신호등이 없었습니다.
어찌됬건 계단을 내려가보니 교회버스가 떠나려고 시동을 걸고 문을 닫기 시작하기에 저는 초등학생이 가능한 목소리로 빽하고 기다려 달라고 소리를 지른후에 도로를 가로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빨간선대로 달려가고 있었는데 동생은 그당시에는 저보다 달리기가 느려서(지금은 뛰기 시작하면 제가 못잡아요...한살차이인데...) 제가 중앙에 도달했을때 즈음에 겨우 인도로 내려오고 있던중이었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야한다는 일념하나로 도로를 가로지르던 저에게 뒤에서 누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위험해!"
위험하기는 개뿔. 이라고 생각하면서 오른쪽을 돌아보니까 청록색의 17인승 밴 한대가 저를 향해 달려오더군요. 그때는 아직도 느낌이 생생한데 차가 전조등도 안켰는데 전조등을 바로 쳐다보는것처럼 눈앞이 새하얗게 변해버리더군요. 그리고 저는 아픈거고 뭐고 그런거 느끼기전에 정신을 잃어버렸습니다.

"니 병원가야지 어디가냐?"
"저 괜찮은데요?"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가 없지만 그때당시에는 진짜 느낌이 멀쩡했거든요. 추측으로는 통각이 마비되었던게 아닌가 싶은데 어찌됬건 그 형은 사고를 보고 그자리에 선 택시의 문을 열고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저를 태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택시기사분께 나는 멀쩡합니다를 요지로 한 헛소리를 몇십초간 늘어놓았고 택시기사아저씨는 그냥 거울을 하나 얼굴 앞에 비쳐줬습니다. (나중에 그 형한테는 부모님이 뭐 잔뜩 사들고 가서 후사했습니다. 같이 따라갔거든요. 교회에서도 알려져서 그형 이미지 참 좋아졌다고 기억하네요.)
얼굴 반쪽이 완전히 피범벅이 되고 오른쪽 이마부근이 깨져버린 몰골이 보이더군요.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나 사고 당한거구나. 그리고는 닥치고 병원까지 갔죠. 병원에 가서 얼굴에 묻은 피를 닦은뒤에 수술을 하고(한 열바늘 꿰맨듯) 일단 걸어다녀도 괜찮다고 해서 나가니까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입니다. 주일학교 당담하시던 목사님인데 제 병원비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때당시 의료보험과 돈의 크기에 대한 개념이 없던저는 저금통에 만원이 있으니 그걸 보태자고 의견을 내서 크게 웃긴후에 그제서야 생각이 난 동생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일단 사고는 저 혼자 당한게 확실한데 동생이 어떻게 됬을지 걱정디 되기시작해서...
아는분이 곧 병원으로 데리고 온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기억에는 그날 동생을 못봤습니다. 결론적으로 안전하게 귀가했다고는 합니다. 그리고는 한 사나흘 병원신세좀 졌네요. 그게 제 스무살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입원입니다. 그러고보니 병실로 간후에 간호사누님이 허락해서 목사님이 짜장면하고 군만두를 사줬군요. 그때 간짜짱 처음 먹어봤습니다.
제가 춘천살때 일인데 마지막으로 춘천에 갔을때는 저 장소에 제가 날아갔던 자리에 스프레이 뿌려둔게 남아있더군요. 그게 한 못해도 5년 전이니 지금은 사라졌을지도 모르죠. 예전에는 저 삼거리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안납니다 'ㅅ'
이건 여담인데 사고당시 가해차량의 브레이크가 몇초만 늦게걸렸어도 저는 착륙과 동시에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고 합니다. 상황을 다 들은 의사선생님이 입원다음날 와서 말해주고 가더군요. 그리고 운전사가 저를 받은 직후 내려와서 제탓이나 뭐니하고 욕을 해대다가 주위의 아주머니들한테 일방적으로 까였다고 합니다 'ㅅ' 주제는 "어른이 운전도 똑바로 안해서 애를 치고 할 소리가 아닌 소리를 해댄다" 였다고 하더군요. 경찰도 저한테 여러번 왔다가면서 이것저것 물어보길래 대답해 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게 사고 정황을 묻는 이야기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뭐 뻔한 패턴이죠 학교 선생님하고 애들이 우루루 병문안 와서 떠들고 놀고... 근데 그때도 여자애들 남자애들 두그룹 나뉘어서 따로오더군요 'ㅅ'
이 사고에서 제가 얻은건 머리의 상처뿐입니다. 어려서였던지 지금은 이마에 흉터자국 같은건 없고 다만 만지면 희미하게 느껴는집니다. 운이 좋은 케이스라 뭐 뼈가 나간데도 없고 하는데 가끔 두통이 찾아옵니다. 이 두통은 딱 하루 가는데 아침이 클라이맥스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이 완화됩니다. 가끔 그게 너무 심하면 학교 쉬는거죠 'ㅅ' 그리고 오후 2시에서 3시사이에 가볍게 머리가 아픈날도 많고요. 그냥 만성 두통하나 따라온겁니다. 저는 그냥 지병있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ㅅ' 이걸 지병이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의문이지만.
뭐 저거 하나로 액땜한듯 그뒤에는 별탈은 없었습니다. 아 초등학교때 방송실에 불낸일에 중학교때 식목일 호출사건, 그리고 학교축제 농땡이사건도 있군요.... 그건 나중에 또 심심하면 다루겠습니다. 'ㅅ' 근데 보니까 전부 방송부 관련 이야기군요.
P.S - 그나저나 이번 여름방학에 춘천한번 가서 예전 닭갈비 단골집 가야되는데... 인공폭포부근에 있는건데 참 맛있었지요 'ㅅ' 저희 아버지 단골집이기도 했고....
# by | 2008/05/11 04:33 | 잡담 | 트랙백 | 덧글(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요츠바랑/ 그게 좀 맛있지 'ㅅ'